재일학도의용군들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전역에 거주하는 청년과 학생 642명이 자진하여 직장과 학업을 중단하고 의용대를 소집해 조국전선에 참전한 사람들입니다.
재일학도의용군은 유엔군의 일원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였고, 원산·이원상륙작전, 갑산·혜산진 탈환 작전, 장진호 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에도 참전하여 135명이 전사를 하였습니다. 이는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 당시 세계 각지에서 살고 있던 이스라엘 국민들이 아랍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조국을 구하고자 자진 입대한 것보다 무려 17년이나 앞선 일입니다.
6·25전쟁이 끝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된 후 저희 재일학도의용군들은 일본으로 귀환하려 하였으나, 일본정부에서 1952년 4월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근거로 입국을 거부하여 242명은 조국 땅에 잔류, 이산의 아픔을 안은 채 학업과 취업의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서러운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는 한국 땅에 남은 재일학도의용군들이 조직한 단체입니다.
정부에서는 1968년부터 재일학도의용군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여 보상을 해주고 있으며, 참전의 높은 뜻을 기리어 1967년 1월 참전자 642명 중 소재 확인자 317명에게 방위포장을 수여했고, 1997년도에는 소재불명 등으로 서훈을 하지 못했던 45명을 찾아 추가로 포상하였습니다.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에서는 1973년 국립묘지에 ‘재일학도의용군위령비’를 건립하였고, 1979년에는 최초로 참전한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 수봉공원에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를 세워 매년 기념식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8년 12월 국립서울현충원 16묘역에 재일학도의용군 묘역 설치를 승인하였으며 이듬해 2009년 4월 국립서울현충원 16묘역에 재일학도 전몰용사 위령비를 설치하였습니다.
더불어 2014년 5월 일본동경 재일본대한민국민단본부에 박근혜대통령의 친필휘호인 “충혼비”를 제막, 설치하였습니다.
우리 재일학도의용군들의 마지막 바람은 ‘숭고한 애국정신 인식 및 계승’ 으로서 기념사업회 등을 통해 그 옛날 현해탄을 건너 조국전선에 뛰어들었던 재일학도의용군의 나라정신과 역사를 후손들이 영원히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